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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증권/해외증시

[무대책-비책]버냉키 FRB의장 추가부양책에 침묵 왜?


버냉키 FRB의장 추가부양책에 침묵 왜?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양적완화(QE)를 비롯한 경기부양책에 대해 언급을 아낀 것은 미국 경제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좀 더 지켜보자는 뜻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경제가 당장 더블딥(이중침체)에 빠져들 것을 염려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버냉키 의장이 밝힌 대로 다음달 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열릴 때까지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 상황을 지켜본 뒤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잭슨홀 심포지엄 연설을 통해 버냉키 의장의 미국 경제에 대한 인식은 다소 긍정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경기의 완만한 상승세가 계속되고, 강화될 것으로 본다"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성장률과 실업률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버냉키 의장의 이런 인식은 지난 9일 개최된 FOMC 회의에서 2013년 중반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하기로 함으로써 기본적인 경기부양은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국의 최근 경제 지표는 지난해 8월 잭슨홀 심포지엄에서 2차 양적완화 방침을 시사했을 때에 비해 개선됐다는 평가가 많다. 일부 경제지표 악화에도 불구하고 7월 내구재 주문이나 시카고 연준이 발표한 7월 전미 경제활동지수 등은 전월비 상승세를 보였다.

당장 추가적인 부양책을 발표하지 못한 배경에는 물가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지난해의 경우 일본에서 경험한 것과 같은 디플레이션이 염려된 탓에 양적완화 조치를 취하는 데 따른 부담이 적었다. 그러나 지금은 물가가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난 1월 1.6%이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월 3.6%까지 치솟았다. 양적완화 등 섣부른 경기부양 조치는유동성 증가로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경기 침체 가능성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면 자칫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

그 밖에도 이번 잭슨홀 심포지엄에서 3차 양적완화 조치가 발표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올 6월까지 총 6000억달러를 투입한 2차 양적완화에 대한 평가가 그다지 우호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2차 양적완화로 인해 고용시장이 다소 개선되고, 디플레이션 염려가 차단되는 등 효과는 인정받았다. 올들어 실업률과 신규 실업수당청구건수 등 실업 지표는 일부 개선됐고, 물가가 오르면서 일본식 불황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생겨났다.

그러나 전반적인 경기부양 효과 측면에서 양적완화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지 못했다. 시중에 푼 자금 규모에 비해 경제 살리기 효과가 미미했다는 것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은 "2년간 2조달러 이상 돈을 풀었지만 신용을 완화하거나 경제를 살리는 데 거의 도움이 안 됐다"고 혹독한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 GDP 성장률은 지난해 3분기 2.6%를 기록한 뒤 4분기 2.3%, 올 1분기 0.4%로 떨어진 데 이어 2분기에는 1.0%로 반등했다. 그러나 26일(현지시간) 미 상무부는 2분기 경제성장률 수정치가 1.0%를 기록해 지난달 발표한 속보치(1.3%)보다 둔화됐다고 밝혔다. 미국 가계의 소비심리도 급격하게 위축됐다. 이날 발표된 미시간대학의 8월 소비자 심리지수는 55.7을 기록하며 전달의 63.7을 크게 밑돌았다.

시장에 유동성이 과잉공급되면서 상품가격 급등을 초래했다는 비판도 있다. 금값과 유가 상승으로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유발했다는 것이다.

버냉키 의장이 시장이 기대하던 양적완화 조치를 내놓지 않았지만 글로벌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그다지 크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 경제가 당장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버냉키 의장이 발언이 오히려 향후 경제 회복에 대한 신뢰를 심어준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이날 버냉키 의장 발언 이후 미국 뉴욕 증시가 장 초반 상승세로 전환한 것에서도 그런 평가에 힘이 실리고 있다.

변우영 대우증권 연구원은 "이번주를 거치면서 '잭슨홀'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가 계속 낮아졌기 때문에 결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며 "잭슨홀 이벤트 이후 무엇이 시장에 영향을 줄 것인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버냉키 의장이 양적완화를 시사하지 않음으로써 역설적으로 미국 경제가 더블딥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간접적으로 나타냈기 때문이다.

버냉키 의장이 양적완화 카드는 접었어도 연준이 두 손 놓고 시장을 지켜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달에 열릴 FOMC 회의에서 양적완화 대신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는 장ㆍ단기 금리구조에 대한 연준의 개입을 의미하는 것으로 연준이 보유하는 단기채를 장기채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박중섭 대신증권 연구원은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는 미국 국채 30년물과 같은 장기 채권을 연준이 매수하면서 미래현금이 현재 시점으로 앞당겨져서 시장에 풀리는 효과가 있다"며 "인플레이션을 크게 유발하지 않는 장점과 모기지 금리하락으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주식시장을 되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외환시장에서도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버냉키 연설 내용은 외환시장에 제한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원화값이 상당 부분 절하돼 있는 상황에서 원화값이 추가로 하락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다.

류현정 씨티은행 부장은 "이미 원화 등의 화폐는 3차 양적완화를 안하는 것에 대한 시장의 상황이 반영돼 있다"며 "3차 양적완화가 없다고 해도 영향이 그리 크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