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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의 미래] 전자책 출판시장 패권 도래…만화·소설, 종이책 점유율 추월

 
[전자책의 미래] 전자책 출판시장 패권 도래…만화·소설, 종이책 점유율 추월 

 

◆ 21세기 구텐베르크 혁명 전자책 ◆ 



  
 2008년 독서광인 직장인 김 모 씨(39)의 서재에 쌓인 책은 수천 권에 달했다. 늘어나는 책을 감당하기 어려워 지난 3~4년간 도서관에 기증하기를 수차례. 그래도 일주일에 2~3권씩 사들이다 보니 또다시 서재에는 1000권 가까운 책이 쌓였다. 공간이 부족해 고민하던 그의 머리를 쳤던 단어는 ‘전자책’이었다. 그는 읽고 싶은 책이 전자책으로 나오면 무조건 전자책을 택했다. 영문서적을 읽기 위해 지난해 미국 출장길에 아마존 ‘킨들’까지 사왔다. 단말기 값은 80달러로 우리나라 돈으로 10만원이 채 안 됐다. 김 씨는 “느낌은 다소 다르지만, 책의 내용을 읽고 체득한다는 점에서 종이책과 전자책이 다를 바 없다”며 “가격은 싸고, 공간을 차지하지 않아 앞으로도 전자책 구매를 늘릴 생각”이라고 밝혔다. 

전자책이 종이책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105년에 중국 황실의 환관이었던 채륜(50~121년)이 나무의 섬유, 밀의 줄기, 뽕나무 껍질로 종이를 발명했을 때, 그는 자신이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일을 했다는 점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종이는 이후 2000년 가까이 인류 역사와 함께했다. 오감을 자극하며 지식 전달의 매개 역할을 맡아온 종이가 100년도 안 된 IT 발달 속의 부산물인 전자책에 그 자리를 내준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종이책이 전자책에 콧방귀를 뀔 상황은 아닌 게 분명하다. 전자책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이미 전자책이 출판업계의 대세다. 

아마존 전자판 매출 종이판 앞질러 

매출은 종이책 시장의 10% 수준이다. 하지만 전자책 시장 성장 속도를 감안하면 수년 내 역전될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2010년만 해도 미국 전자책 시장은 2008년 대비 12배 커졌다. 반면 같은 기간 종이책 가운데 하드커버(hardcover) 시장은 1%도 성장하지 못했다. 보급판인 페이퍼백(paperback) 시장은 14%나 줄어들었다. 

전자책 시장을 주도하는 업체는 아마존이다. 2007년 11월 전자책 단말기인 ‘킨들’을 선보인 이후 불과 3년 만인 지난해 초 전자책 매출이 종이책을 앞질렀다고 선언했다. 80달러에도 못 미치는 값으로 내놓은 ‘킨들’은 아이패드보다도 잘 팔리며 지금까지 1000만대 이상이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책에 관해서라면 명함도 못 내밀던 한국에도 변화의 싹이 움트고 있다. 최근 교보문고와 아이리버가 공동 개발한 전자책 단말기 ‘스토리K’는 독서광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제품은 지난 1월 선보인 이후 열흘 만에 초기 물량 4000대가 팔렸다. 회사 측은 예상치 못한 판매에 놀라 급히 추가 생산에 들어갔고 또다시 8000대 판매를 돌파했다. 2001년 전자책 전용단말기 출시 이후 지난해 말까지 11년 동안 국내에 팔린 전자책 단말기 총량(약 6만대)의 13%가 한 달도 안 돼 팔린 셈이다. 

이 때문에 출판계와 IT업계는 지난 10년간의 부진을 딛고 올해 국내 전자책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전자출판협회와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10년 1975억원 규모였던 시장은 지난해 2891억원으로 커졌다. 이 수치는 2013년 5800억원대로 2배 이상 성장하리라는 게 업계의 예상이다. 출판시장 규모를 3조5000억원으로 봤을 때 적어도 20% 가까이를 전자책이 차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성장 기대감이 크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양질의 콘텐츠(책)와 이를 보관하고 연동할 수 있는 우수한 플랫폼(책장) 확보가 필수다. 출판업계 한 관계자는 “빈약한 콘텐츠와 취약한 저작권, 출판사와 유통사 간의 갈등 등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고 전했다. 

종이책 대체하는 전자책
교재·문제집 이어 시험 응시까지 

서울 삼성동에 사는 대학생 김미연 씨(23)는 틈나는 대로 강남구 전자도서관 사이트에 들러 신간을 확인한다. 며칠 전에는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책을 아이패드로 내려받아 지하철 안에서 3일 만에 독파했다. 김 씨는 “사이트에 들어가 회원 가입하고 태블릿이나 스마트폰 기기만 등록하면 무료로 책을 내려받을 수 있다”며 “최신 베스트셀러부터 고전 문학, 어학, 대학교재까지 다양한 종류의 책이 있는 데다 언제 어디서든지 내려받아 손쉽게 볼 수 있어서 전자책을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전자책은 독자 입장에선 다양한 책들을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볼 수 있어 좋고 공급자 입장에선 제작·유통비를 줄이고 추가 매출을 올릴 수 있어 일석이조다. 

2010년 8월, 77년 역사(1933년 창간)를 자랑하는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Newsweek)가 단돈 1달러에 매각됐다. 5000만달러 이상의 회사 부채를 떠안고 직원 250명의 고용을 승계하는 조건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뉴스위크는 ‘종이책 vs e북-꼭 어느 하나가 이겨야만 하나?’라는 주제로 특집 기사를 냈다. 종이책과 전자책의 제작비, 인세, 무게, 책값까지 계산했다. 결과는 전자책의 완승. 심지어 전자책 단말기 하나를 만드는 데 들어간 탄소배출량은 종이책 40~50권과 맞먹는 것으로 분석됐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전자책이 종이책의 보완재가 아닌 부분 대체재가 될 것으로 내다본다. 과거 TV 등장으로 라디오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여전히 라디오가 미디어 매체로서 영향력을 발휘하듯이 종이책도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송대훈 교보문고 디지털콘텐츠사업팀장은 “이미 로맨스, 만화, 판타지, 무협류들은 오프라인 서점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고 전자책에 편입됐다. 다른 장르도 유사한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요즘 대중서뿐 아니라 교과서에서도 전자책 도입을 추진 중이다. 정부에선 2012년까지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2013년까지 디지털 교과서 활용 학습모델을 개발해 2015년까지 초·중·고에 디지털 교과서를 보급할 계획이다. 

전자책의 장점으로는 가격, 휴대성과 편리성, 멀티미디어 기능 등이 꼽힌다. 전자책은 인쇄비가 들지 않고 온라인으로 유통하다 보니 종이책보다 가격이 30% 이상 저렴하다. 가령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은 정가가 1만6000원이지만, 전자책은 반값인 8000원이다. 또 번거롭게 여러 책을 갖고 다닐 필요가 없다. 무게 200g이 안 되는 단말기에 수백 권을 넣고 언제 어디서든지 쉽게 꺼내 볼 수 있다. 멀티미디어 기능을 갖춘 전자책은 새로운 읽기 문화도 만든다. 전자책을 읽다가 얻은 아이디어나 주제를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올려 다른 사람과 실시간으로 토론과 의견 교환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를 두고 이재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소셜 리딩(social reading)’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자책이 시각을 넘어 청각, 촉각까지 자극하는 멀티미디어 공간으로 거듭날 것”으로 예측했다.  



 



 
 전자책 단말기 판도
교과서 시장 선점하는 쪽이 승리 

2년 전부터 PC에 전자책을 내려받아 본 직장인 김대섭 씨(35)는 요즘 전자책 전용단말기 구입을 놓고 고민 중이다. 기기 가격이 10만원 이하로 낮아져 부담이 준 데다 베스트셀러들도 전자책으로 동시 출간돼 사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다만 단말기 간에 콘텐츠 호환이 안 되고 책마다 다른 뷰어(읽기 전용 프로그램)를 깔아서 봐야 하는 번거로움이 여전히 불만이다. “지난해 자주 이용했던 전자책 출판사가 도산하면서 이전에 내려받아 소장하고 있던 100여권의 책을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어서 애꿎은 돈만 날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선 어떤 단말기를 쓸지 가장 고민이 된다. 선택 기준은 기기 가격과 콘텐츠 양. 현재 전자책 단말기 시장 2대 강자는 애플의 아이패드와 아마존의 킨들이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전자책 단말기 시장점유율은 아이패드가 57.6%, ‘킨들 파이어’가 15.3%(추정치)인 것으로 조사됐다. 시장점유율 차이는 크지만 킨들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킨들 파이어가 선전한 안드로이드 진영 스마트패드 시장점유율은 39%로 2010년 4분기 대비 10%포인트 늘어났다. 반면 아이패드는 같은 기간 10%포인트 하락해 57.6%를 기록했다. 아이패드 점유율을 고스란히 빼앗아 온 셈이다. 

킨들 파이어는 아이패드의 반도 안 되는 가격 경쟁력에 아마존의 방대한 콘텐츠가 장점이다. 킨들 파이어의 가격은 199달러(약 23만원). 500∼800달러(58만∼93만원)에 이르는 아이패드보다 훨씬 싸다. 킨들 단말기 중엔 가격이 79달러(약 9만1000원)에 불과한 전자책 리더기도 있다. 아마존은 1900만개에 달하는 영화, 음악, TV 프로그램 등을 마련해 킨들 단말기용으로 제공 중이다. 

애플은 디지털 교과서 사업으로 승부의 초점을 맞췄다. 애플은 연초 동영상과 애니메이션 등의 구현이 가능한 쌍방향 디지털 교과서 플랫폼 ‘아이북2’를 선보였다. 이 앱을 아이패드에 설치한 뒤 애플 앱스토어에서 교육용 콘텐츠를 내려받아 교과서 대신 사용할 수 있다. 애플은 아이북2 디지털 교과서를 개발해 고교용 교과서의 90%를 서비스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미 교과서업체인 피어슨과 맥그로-힐, 호톤 미플린 하코트 등과 제휴를 맺었고 가격은 권당 14.99달러 선으로 알려진다. 

이재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앞으로 전자책 시장은 교과서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애플이 교과서 시장에 뛰어든 것도 전자책 시장이 단말기가 아닌 누가 교과서를 선점하느냐에 따라 판도가 달라질 것으로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국내 전자책 기기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 전자책 전용단말기 중심으로 성장한 미국과 달리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스마트 기기를 중심으로 전자책 시장이 형성됐다. 콘텐츠가 증가했다고 하지만 해외와 비교해서 빈약한 편이다. 현재 교보문고는 11만여종, 인터파크는 7만여종의 콘텐츠를 공급 중이다. 예스24를 비롯한 인터넷 서점과 KT, SK브로드밴드 등 이동통신사들이 전자책을 판매한다. 아이리버가 국내 단말기 중 처음으로 10만원 안쪽의 가격으로 스토리K를 내놓았고 이에 뒤질세라 인터파크는 6만원대로 판매에 나서 저가 경쟁에 불을 붙였다. 

주세훈 인터파크 도서부문 상무는 “전자책 시장을 키우기 위해서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싼 가격에 기기를 보급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전자책 출판시장
텍스토어 100만권 판매 

국내에 전자책이 들어온 때는 2000년대 초반으로 벌써 10여년이 지났다. 출판계는 이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른다. 출판사와 유통사 간 갈등을 빚은 데다 유통 과정도 체계적이지 않아 볼 만한 콘텐츠를 생산해 내지 못했다. 그간 전자책은 출판사가 종이책 파일을 도서 유통사 여러 곳에 넘겨 만들어졌다. 유통사들은 각각 다른 디자인과 판형으로 전자책을 냈다. 유통사가 전자책을 제작하다 보니 책의 소유권과 품질을 관리하는 검수권도 유통사의 몫이었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출판사는 소유권, 검수권이 없어 유통사가 만든 전자책이 얼마나 팔리는지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출판사가 전자책을 낼 필요성을 느낄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이런 전자책 시장에 변화가 감지된다. 

국내 주요 출판사 60여곳이 공동 설립한 콘텐츠 관리업체인 한국출판콘텐츠는 지난 2월 8일 서울 광화문 KT 올레스퀘어에서 ‘출판, 또 다른 선택’ 행사를 갖고 전자책 콘텐츠 출시 본격화를 선언했다. 한국출판콘텐츠 측은 “출판사가 전자책을 제작해 정가를 매기고 출판계 공용 디지털저작권관리(DRM)를 적용해 유통하겠다”고 밝혔다. 

전자책 콘텐츠 확보에도 가속이 붙었다. 텍스토어는 소설·자기계발서·만화·잡지 등 100만권이 넘는 전자책을 판매한다. 한국출판콘텐츠는 올해 전자책 2만권을 공급할 계획이다. 지난해보다 2배 많은 물량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전자책 시장을 키우려면 구매와 유통 과정을 더 쉽게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비밀번호만 넣으면 간단히 책을 살 수 있는데, 국내에서는 공인인증서·휴대전화 인증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 책을 구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