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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nFo/경제

13년 거래은행도 문전박대 '흑자도산'

13년 거래은행도 문전박대 '흑자도산'

[죽음의 워크아웃…몰락하는 중견건설사]<上>무차별 자금회수 껍데기만 남겨


[[죽음의 워크아웃…몰락하는 중견건설사] < 上 > 무차별 자금회수 껍데기만 남겨]
- 충격받고 속병든 오너회장 끝내 세상 뜨기도
- 'PF부실 확대' 주범 은행권 채권회수만 주력
- 풍림·우림건설 등 워크아웃후 법정관리 수렁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란 파고에도 17년 동안 흑자를 내온 동양건설산업은 지난해 4월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인마을' 개발사업을 위해 삼부토건과 함께 은행에서
빌린 4270억원 규모의 PF(프로젝트파이낸싱)가 화근이 됐다.


 개발사업은 부동산시장 침체를 맞아 난항에 빠졌다. 동양건설산업은 만기를 연장하려면 추가 담보를 제공하라는 은행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흑자도산했다.


이 과정에서 최윤신 회장은 13년간 거래한 은행을 설득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끝내 '문전박대' 당했다. 충격이 컸던 탓일까. 최 회장은 극심한 스트레스 끝에 폐암수술을 받았고 병세가 악화돼 법원의 법정관리 개시 결정을 한 달여 앞둔 지난해 6월 세상을 등졌다.


#월드건설은 2009년 사이판에 있는 월드리조트를 290억원에 매각했다. 2010년 11월에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교보사거리에 있는 본사 사옥을 700억원에 팔았다. 당시 '헐값 매각' 논란이 일었다.


월드건설은 자산을 모두 팔아넘겼지만 은행들로부터 자금지원이 끊겨 신규수주를 하지 못한 상태였다. 결국 3개월 뒤 월드건설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직원들은 인력을 3분의1로 줄이고 급여도 30~40% 정도 삭감한 고난의 시간이 물거품이 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최근 중견건설사들의 줄도산이 이어지고 채권은행들이 주도하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중인 회사마저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사례마저 늘고 있다.


법정관리 중인 한 건설사 관계자는 "은행에서 얘기하는 '아름다운 동행'은 원리금을 꼬박꼬박 챙길 때만 해당된다"며 "사업이 어렵거나 연체가 시작되면 동반자에서 혼자만 살자는 식으로 돌변하는 걸 보고 섬뜩함마저 느꼈다"고 회상했다. 그는 "회사는 껍데기만 남는데 은행들 눈치 보느라 대놓고 얘기하지도 못해 속병을 앓는 기분"이라고 털어놨다.


 물론 경영난의 1차 책임은 건설사 경영진에게 있다. 시장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주택경기에만 의존한 '천수답'식 경영구조를 탈피하지 못해서다. 불투명하고 방만한 구태경영도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여기에 은행들이 건설사의 부실을 더욱 악화시킨 주범이라는 비판이 끊이질 않는다. 은행들은 부동산시장 활황기에 사업성 검증은 뒷전인 채 담보를 잡고 무차별적인 PF대출 영업에 집중, 거품을 키우는데 일조했다. 이후 부메랑처럼 건설사 부실로 돌아오자 이번엔 무차별적인 자금회수에 나선 탓이란 지적이다.


 이로 인해 재무상황이 여의치 않은 중견건설사들은 자금난에 시달려 흑자도산하거나 줄줄이 워크아웃에 들어가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은행들이 워크아웃 건설사의 계좌를 틀어쥔 채 신규사업을 중단하고 기존 자산을 매각, 채권을 회수하는데 우선순위를 뒀다는 게 건설사의 하소연이다.


경남기업, 이수건설처럼 워크아웃을 조기 졸업한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 법정관리란 더 깊은 수렁에 빠진 것은 은행들의 매서운 채권 추심 때문이란 지적이다. 지난해 월드건설과 올해 풍림산업, 우림건설이 워크아웃 이후 법정관리에 들어간 사례다.


 은행들도 당장 정부로부터 자산건전성을 높이라는 압박을 받는 처지여서 건설사를 지원하는데 한계를 안고 있다. 문제는 이를 대신해줄 자금시장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김상훈 동양증권 신용분석 연구원은 "은행들이 대손충당금을 쌓고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어서 건설사를 지원하기 힘든 현실"이라며 "PF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이나 회사채시장이 은행의 PF를 받아줘야 하지만 이곳도 얼어붙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멀쩡한 회사라도 자금난 때문에 서서히 말라죽을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