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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분석/Kospi,Dow,Wti

다우 존스 산업 평균 지수 (1900 - 현재 월간)차트와사건정리



미국 주식시장의 100년의 역사(차트와 사건별 정리, 1896년~2005년)
 

 
열심히 일해 저금해 먹고 사는 시대는 끝났다
생존을 위한 선택-한가위 특집 II<1>] 중국은 올해로 공산당 창당 60번째 생일 행사를 거창하게 진행하고 있다.

 

지금은 거의 유명무실해졌지만, 사회주의 최초의 혁명이 1917년 볼세비키 혁명으로 시작한다면 이 세상에 공산주의라는 것이 생긴 것도 그리 멀지 않은 일이었다. 

블라디미르 레닌도 처음에 “혁명이 이렇게 빠르게 올 줄은 몰랐다”고 할 정도로 공산주의는 빠르게 확산되었었는데, 이유는 당시의 민중들에게 미래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저러다가 말겠지...' 하고 넋을 놓고 있던 미국이 긴장하면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고자 했지만 공산주의라는 바이러스는 너무 강력했고 점점 더 많은 자금이 동원되어도 쉽게 제어되지 않았다. 

그 결과,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세상은 공산당과 자유진영이라고 하는 양극체제로 더욱 빠르게 변환되어 갔다. 다급해진 미국은 1947년부터 소위 “마샬플랜”을 통해 서방과 일본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남과 북으로 갈리게 되었고 더 이상 공산주의의 확산을 좌시할 수 없었던 미국은 1961년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을 선언하게 된다. 

하지만 무려 15년 동안에 걸쳐 진행된 전쟁에서 미국은 전쟁사에 1패를 기록하게 되고 물러나게 된다. 베트남 전후 미국은 단지 수 만 명의 사망자만이 사회적 문제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전쟁에서 지고 난 이후 엄청난 빚더미에 오르게 되었고 그 이자를 감당할 수 없었던 미국은 전쟁이 한창이던 71년에 이르러 금 보유 없이도 돈을 마구 찍어낼 수 있는 명목화폐제도로 바뀌어 버렸다. 

소위 닉슨쇼크로 알려진 이 사건 이후 이 세상의 돈들은 그 고유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이 감당해야만 하는 전쟁은 베트남 전쟁 하나만이 아니었다. 레이건 행정부 때 냉전을 종식시키고자 엄청난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 탈레반 등과 연계해 구소련의 붕괴를 위해 대리전쟁을 지원했고 그 결과 1991년 구 소련은 붕괴되었지만 또다시 미국은 엄청난 적자에 시달리게 된다. 

제국의 전쟁은 끝이 없었다. 냉전을 끝낸 탈레반은 미국과 다시 맞서기 시작했고 과거에 없던 보이지 않는 적들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이었다. 

사실 미국이라는 나라가 만성 적자국이 된 것은 근간의 일이다. 소득세를 받지 않는 시대에도 미국은 엄연한 흑자국이었다. 미국의 적자는 2차 대전 이후 줄곧 이름만 바뀌며 진행되어왔던 전쟁이 가장 큰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럼 미국의 100년 차트를 보자. 참으로 재미있는 모습이다. 다우지수가 400포인트에서 41포인트까지 하락을 했었던 1930년대의 대공황도 그냥 평평하게 보일만큼 주가는 80년대 이후 가파르게 상승을 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0년대에 미국의 기업들이 상당히 많은 이익을 내었던가? 물론 그런 점도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1961년 베트남 참전 이후 20여 년간 다우지수는 겨우 500에서 1000사이를 오갔었는데 갑자기 순식간에 14000포인트까지 뛰어 오른 이유가 과연 기업들의 괄목할만한 실적 때문 만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미국의 기업들은 딱 80년대 이후에만 발전을 했던가?

닉슨 쇼크 이후 미국에서는 뭔가 엄청난 물량이 투입되는 전쟁이 끝나고 나면 여지없이 돈을 찍어냈었다. 잘 보면 미국의 다우지수는 80년대에 빠른 속도로 상승을 하다가 더 가파른 상승을 시작한 것은 1995년부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약간의 시차가 발생한다. 베트남 전은 75년에 마쳤지만 주가는 80년대 들어 상승했다. 미국의 냉전은 91년에 끝났지만 95년부터 가파른 상승을 시작했었다. 

어째서 동시성을 가지지 않고 수년 후에 급한 상승을 기록하게 될까?

당연하다.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 돈을 발행하는 것은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미국이 “전쟁 때문에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하니 돈 좀 찍어내겠소”...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렇게 된다면 달러화는 불신 속에서 즉시 시장으로부터 쫓겨나게 될 것이다. 어차피 명목화폐라는 것은 말 그대로 명목상의 화폐이기 때문이다. 언제든 금으로 바꿀 수 있다면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겠지만 신뢰를 잃게되면 언제든지 종이조각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 명목화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뢰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했고 전쟁이 진행 중일 때 보다는 전쟁이 끝나고 나서 빚을 갚을 때가 되면 이들은 돈을 찍어내도 될만한 희생양을 등장시켰다. 

예를 들어보자. 75년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미국은 엄청난 적자에 시달렸다. 빚을 갚자니 방법이 없고, 그렇다고 떼어먹을 수도 없고...방법은 인플레를 조장해서 실질적인 빚을 탕감하는 것이 최적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쉽게 예를 들어 1억 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면 1억 원의 화폐가지를 절반으로 떨어뜨리면 실질적으로 갚는 것은 5000만원만 갚으면 되니까 말이다. 

즉, 전쟁 등으로 인해 엄청난 빚을 지고 나서 그것을 정산할 때에는 반드시 그들은 돈을 마구 찍어내기 시작했고 화폐가지의 소실분은 고스란히 달러화를 쓰는 대다수의 나라들에게 떠 넘겼던 것이다. 공산주의로부터 자유진영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미국이 주도해서 했지만 그 비용은 세계인들이 같이 부담한 셈이다. 

달러를 마구 찍어내는 과정에서 미국의 물가도 치솟기 시작했었는데 이는 실물가치의 상승을 가져오게 해서 소위 80년대 이후의 말도 안 되는 대세 상승기를 만들게 되었다. 

자 그럼 희생양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앞서 거론했듯이 달러를 찍어낼 때에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반드시 필요했다. 1970년대에는 그 희생양으로 오일파동을 이용했다. 미국에서 얼마든지 통제가 가능한 석유였지만 그 석유가격을 급히 올려서 소위 오일파동이라는 소문을 낸다. 

이는 바로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전략이다. 사람들이 석유 가격에 온통 집중하고 있을 때에 그들은 은근슬쩍 달러를 발행해서 시장에 뿌렸다. 물론 이유는 오일가격 상승에 따른 극심한 경기의 침체를 치료한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1991년도에 냉전이 종식되고 미국은 93년을 전후로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또다시 겪게 된다. 역시 당시에도 화폐를 마구 찍어내는 기간이었는데 주가의 상승속도가 역시 빠르게 증가했었다. 2001년도 911테러가 나게 되고 역시 엄청난 화폐를 발행하게 되고 주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 유동성의 여파는 2007년 미국의 주가를 14000포인트에 도달하게 만들었고 우리네 주가 역시 2000포인트를 넘어서게 했었다. 결국,그동안 주가가 오른 것이 아니었다. 달러가 하락한 것이지...
 

글출처:http://yesvietnam.net/news.html?caigi==clTYJjYrF3V9YTbm0TNtZSP00mJ3EDMytWMwMWPz0mJ3EDMytWPy0mJ9ETbmI3a9AT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