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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증권/해외증시

리먼때보다 위기? 위기가 기회다

리먼때보다 위기? 위기가 기회다

세계경제의 위기상황이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경제 역시 각종 지표가 심하게 흔들리면서 다시한번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진단이 쏟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리먼브러더스때보다 더 위험하다는 비관론마저 나온다. 그러나 한국 경제는 지난 2008년에도 국내외의 비관론을 결국 이겨내며 위기를 극복했고, 오히려 경제 체질은 더 강해졌다.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하다. 조선비즈는 현재 한국경제가 실제로 위기인지, 이번 위기를 다시한번 역전의 기회로 삼을 수는 없을지 경제·산업 전반에 걸쳐 살펴보는 ‘beyond crisis’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한국 1997년 회귀(Korea:1997 Rewind)’(2008년 8월13일)
‘가라앉는 느낌(Sinking feeling)’(2008년 10월14일)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전후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분석한 한국은 1997년에 이어 다시 한번 망할 나라였다. 10월14일자에는 아예 한 면을 다 채워 한국의 외환위기 가능성을 보도했다. 위기의 진원은 자산가격 상승을 업고 방만한 경제운용을 한 미국과 유럽인데,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허리띠를 졸라맨 한국이 왜 무너져야 하느냐는 반론에는 한국인 스스로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자학(自虐) 섞인 인터넷 논객의 예언이 대인기를 얻고, 사회현상을 일으켰다.

일주일 전인 지난 9월 21일. 한국경제에 독설을 쏟아냈던 FT가 이른바 ‘위기’를 앞두고 다시 기사를 썼다. 이번 내용은 어땠나?

“펀더멘털(기초체력)측면에서 볼 때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을 확률은 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낮다”

3년만에 다시 ‘한국에’ 위기가 왔다고 얘기한다.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연상된다’느니, ‘지표는 리먼때 이상’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다시금 외환위기를 우려하는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의 말들이 시장을 채우고 있다.

그러나 지금보다 훨씬 경제 지표가 좋지 않았던 2008년에도 대한민국 경제는 결국 위기를 이겨냈고, 이젠 1997년의 실패 위에 2008년의 성공이 대한민국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현재의 글로벌 위기가 수습단계인지 아니면 이제부터 시작인지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그 어떤 경우이든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얘기한다. 2008년의 위기 역시 한국을 G20의 모범학생으로 꼽히는 ‘실적’을 만들어줬고, 한국기업들을 명실상부한 글로벌 톱레벨에 올려놓았다.

물론 위기를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실을 냉정하게 보는 비관론은 장기적인 경제의 약이다. 다만, ‘자기실현적 예언’에 휘둘려 우왕좌왕할 경우, 피해 갈 수도 있는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 역시 기억해야 한다고 경제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지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극복해나갔듯 지금 위기 속에서도 다음을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700억 달러 나가도 외환보유액 2008년 수준 유지

그럼 과연 현재 우리 경제 상황은 위기에 취약한 것일까?

9월 현재 각종 지표는 2008년 리먼 사태와 비교해볼 때 당시 충격의 약 40% 정도를 소화해 놓은 단계다. 만약 그리스가 실제로 부도가 나면 당시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시각도 엄연히 있다.


지난 26일(현지시각) 뉴욕시장에서 한국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204bp(1bp=0.01%)를 기록했다. CDS 부도 위험을 사고파는 신용파생상품으로 한국 정부가 외국에서 발행하는 외화표시채권에 대한 일종의 보험료가 CDS 프리미엄이다.

일각에서는 CDS 프리미엄이 프랑스(197bp)보다 높다며 위기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트리플 A’인 프랑스보다 신용등급이 낮은 우리나라 프리미엄이 그동안 낮았던 것이 오히려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정부는 설명한다. 또한 태국(230bp)·중국(173bp)은 물론 원천적으로 대외부도가 날 수 없는 일본(142bp)의 수치도 오르는 등 세계 각국이 함께 상승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만 놓고 봤을 때도 최고치(699bp)를 기록했던 2008년 10월 27일과 비교하면 3분의 1지점 수준이다. 

‘지표’는 지표일 뿐이다. 지표는 세계 금융시장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등락할 수 있는 수치이며 심리가 함께 들어가 있다. 지나치게 얼어붙은 투자심리가 회복되면 자연스럽게 회복될 수 있다. 실제로 26일에는 유럽 위기가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에 주가가 5% 상승하고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22.7원 폭락(원화강세)했다. 물론 반대로 향후 악재가 다시 불거지면 다시 지표는 악화될 수 있다.

외환보유액은 늘어났고 경제 불안요소였던 단기외채 비중은 줄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지난 리먼 사태 당시 2008년 9월부터 12월까지 유출된 외국자본은 695억 달러. 지금 700억 달러가 빠져나가더라도 당시 외화보유액과 비슷한 수준이다. 지난 2008년 8월말 2432억 달러였던 외화보유액이 올해 8월말 기준으로 볼 때 3121억9000만 달러로 22% 증가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7번째로 많다.

더욱이 총 외채 대비 단기외채(1년 안에 갚아야 할 외채)비중이 리먼 사태 당시인 2008년 9월 52%까지 올랐지만 지난 6월말 기준 37.6%로 크게 줄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외환시장의 건전성이 높아졌고 경상수지 흑자도 지속하는 등 우리 경제의 국제 경쟁력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 위기속 자동차·반도체 세계시장 점유율↑

반대로 생각해 보면 리먼 사태 이후 우리 경제가 한단계 급회복을 했듯이, 또 한번의 기대를 할 수 있다는 전망도 가능하다.

자동차산업을 이끌어 왔던 세계 주요 선진국들이 경제위기로 고전하는 사이 국내 자동차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높아진 게 대표적이다. 세계 경제 전체가 가라앉으면 수출도 나빠질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2008년 온 세계 경제가 얼어붙었어도 우리 기업들은 선전했다.

현대·기아자동차의 미국 준중형차 시장 점유율은 지난 2009년 12.5%에서 2010년 15.7%로 오른 뒤, 올해 1분기에는 16.7%까지 높아졌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D램 반도체 세계 시장 점유율도 지난 2008년 49.6%였던 데서 올해 2분기 65%로 위기 이전보다 점유율이 높아졌다.

이에 대해 최종구 기획재정부 업무관리관은 지난 8월 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지난 금융위기를 겪으며) 전자·조선·반도체와 같은 세계 1위 수출품은 2위와 격차를 더 벌렸고 자동차는 1위에 바짝 다가설 만큼 경쟁력을 확보했다”며 “이런 품목들은 경제가 어려울 때 다른 경쟁자를 따돌리고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군다나 2007년~2008년의 위기 때와 달리 유가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도 긍정적인 요소다. 당시에는 유가가 급등하면서 급격히 경상수지가 악화됐었고 한때 ‘한국 부도 가능성’의 근거가 됐다. 당시에는 위기로 유가가 떨어졌고, 경상수지도 흑자로 돌아서면서 위기 극복의 발판이 됐었다.
2008년과 2011년 환율과 코스피지수 비교
◆ 현재는 2008년 위기 극복 자체가 큰 자산

2008년 위기 때 한국이 가장 위험했던 것은 1997년에 한번 국가부도 직전에 갔다는 점이 꼬리표처럼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위기상황이 되자 ‘또 부도나는 게 아니냐’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부도날 가능성이 높은 나라’ 리스트 가장 위에 올랐고, 이 때문에 국제투기세력의 일종의 ‘타깃’이 됐다.

하지만 2008년에 위기를 극복하면서 다시 ‘타깃’이 될 전망은 현재로선 보이지 않는다. 여러가지 경제상황이 다소 악화되고 있지만 우리만 특별히 나빠지는 상황은 아니다. FT는 이미 지난해 “한국이 위기를 통제하는데 만점을 받았다”며 “교과서적인 회복을 이루고 있다”고 이례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문제는 국내에서 지나치게 비관론에 반응하면서 국내 투자자들에 의해 각종 지표들이 흔들리고 이것이 ‘정말 위험해서 지표가 이렇게 흔들리는 게 아니냐’ 는 인식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번 위기는 리먼 사태 때보다 심하지 않아요. 하지만 금융시장 관계자들이 리먼 사태와 같다고 이야기하고, 경제지표들을 그때와 비교해서 짜맞추며 분위기를 심각하게 몰고 가면 투자심리가 실제로 악화돼, 금융시장의 상황도 실제 경제상황보다 안좋아질 수 있다는 것이 무섭습니다.”(A 외국계 증권사 임원)

◆ 경제 펀더멘털 자신감‥기업들 제품투자 확대해야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금융시장 모니터링을 통해 해외자금이 부화뇌동해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우리가 경제 펀더멘털을 내세워 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있는 나라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G20(주요 20개국) 공조를 통해 위기상황에서 자본의 급격한 이동을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나갈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의 경우 세계 경제가 하강국면에 들어가 수요가 줄어드는 것에 대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생산투자를 오히려 제품 경쟁력을 위한 투자로 돌려 위기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상황이다. 1등 기업들이 후발주자들과 간격을 벌리고 반대로 후발 주자들이 선두권으로 도약할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환율이 변동성이 높은 것은 좋지 않지만 원화 값이 약세가 되면서 수출 경쟁력에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지금도 지난 리먼 사태처럼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환율이 급등하면서 엔화에 대한 원화환율은 초약세, 수출경쟁력에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27일 오후 3시 15분 기준 일본 엔화 대비 원화환율은 100엔당 1535원으로 리먼 사태 직후 최고수준이었던 2009년 3월 100엔당 1640원 수준으로 상승했다.

실제로 닛산은 26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28% 수준인 규슈 공장의 해외부품 비중을 2013년까지 40%까지 늘리기로 했다”며 중국과 한국에서 부품을 사오겠다고 했다.

권영선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급등하면서 엔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약세를 띠어 한국 제조업체들이 리먼 사태 이후인 2008년 후반부터 2009년까지 그랬듯 일본보다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처: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9/27/201109270147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