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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방어 '치킨게임' … 후폭풍 우려

환율방어 '치킨게임' … 후폭풍 우려
■ 각국 중앙은행들 경쟁적 금리인하 러시
최근 한달 8개국 인하
자산 가격에 거품 우려… 금융사 부실 위험도 커
금리인상 쉽지 않아 인플레 맞을 가능성

최근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이 잇따라 기준금리를 내리면서 이른바 '치킨게임'에 접어드는 양상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치킨게임이란 자동차가 마주 달리듯 서로가 파국을 감수하고 기싸움을 벌이는 상황. 선진국이나 신흥국 모두 기세 좋게 금리인하 페달을 밟고 있지만 그만큼 감수해야 할 부작용도 커질 수밖에 없다.


1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세계 주요국 가운데 최근 한 달여 사이 기준금리를 내린 나라는 터키, 헝가리(4월)와 유럽중앙은행(ECB), 인도, 호주, 폴란드, 한국, 이스라엘(5월) 등 8개국이나 된다. 특히 헝가리와 폴란드는 올 들어서만 벌써 4차례, 인도는 3차례나 금리를 내렸고 콜롬비아는 1~3월 3번이나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이 같은 금리인하 퍼레이드의 표면적인 공통분모는 예상보다 더딘 경기회복세이지만, 그 이면에는 자국의 통화가치 절상을 막으려는 환율 방어적 성격이 짙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스라엘은 13일 예정에 없던 긴급 회의에서 금리를 낮추면서 아예 대 놓고 "세켈(이스라엘 화폐)가치 상승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10일 금리를 내린 한은 역시 인하의 주요 근거로 각국의 금리인하 움직임을 들었다. 다들 움직이며 환율방어에 나서는데 우리만 얌전히 있기는 어렵다는 게 최근 금리인하 행진의 주요 근거인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요즘 각국 중앙은행의 움직임을 본격적인 환율전쟁으로 규정하긴 어렵지만, 자국의 통화가치 방어 측면을 상당히 고려하면서 금리를 내리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금리인하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 지금처럼 실물경기가 취약한 상황에서 주변국의 움직임에 떠밀려 금리를 더 내릴 경우, 가뜩이나 돈의 힘으로 유지되는 각종 자산가격에 거품만 더할 수 있다. 이미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인 미국과 일본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했던 부동산 가격에 또 다시 거품이 낄 수 있다는 것이다.

한없이 돈을 풀어대는 경쟁이 끝나는 순간, 중앙은행이 제 때 돈을 거둬들이지 못하면 감당하기 힘든 인플레 후폭풍을 맞을 수도 있다. 금리인상은 인하보다 훨씬 어렵다는 게 각국 중앙은행의 공통된 고민이다.

저금리 장기화는 한계기업들의 생명을 연장시켜 경제체질 개선에 필요한 구조조정을 지연시킨다. 여기에 보험사처럼 장기적인 자산운용을 기본으로 하는 금융사들의 부실 위험도 높아진다.

요즘처럼 각국의 금리수준이 낮아진 상황에서 글로벌 양적완화 기조가 방향을 바꿀 경우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같은 신흥국은 급격한 자본유출을 걱정해야 한다. 선진국과의 금리격차(내외금리차)가 줄어든 만큼 더 적극적으로 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금리인상은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10년 이성태 전 총재 시절에도 한은이 정부의 난색으로 금리인상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인하 경쟁을 치킨게임이자 불공정게임으로 본다. 제로금리에 양적완화까지 시행하는 기축통화 국가와 울며 겨자 먹기로 금리를 따라 내리는 신흥국은, 비록 마주 달리고는 있지만 체급이 전혀 다르다는 얘기다. 지금 같은 금리인하 경쟁이 더 이어진다면, 조만간 부작용 부담 때문에 게임 자체를 포기하는 나라가 속출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우리 같은 신흥국은 금리인하로 맞설 여력이 적은 만큼 중국 등과 뜻을 모아 국제적인 공동전선을 형성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