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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미래산업,신성장

온실가스 감소 불확실한데…정부 ‘재생연료 혼합제’ 추진

정부, 2020년까지 경유·휘발유에 바이오 디젤·에탄올 4~5% 섞게 해
202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량 중 8~10%까지 달성하도록 계획 세워

시민단체선 “효과 의문·시기상조” “바이오 연료 원료작물 생산 위해
산림 훼손과 화학비료 사용 늘어” 저에너지 산업으로 전환필요 지적

 *재생연료 혼합제 : 경유·휘발유에 바이오 연료 섞기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겠다며 ‘재생연료 혼합의무제(RFS)’를 본격 시행하려는 데 대해 시민환경단체가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불확실하다며 반대하고 나서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재생연료 혼합의무제는 수송용 연료인 경유나 휘발유에 주로 식물에서 뽑아낸 재생에너지인 바이오 연료를 일정 비율 의무적으로 섞어 공급하는 제도다.
이미 국내 정유사들이 주유소에 공급하는 경유에는 식물성 기름이나 동물성 지방 등을 원료로 만든 연료가 2% 함유돼 있지만, 이 혼합은 법적 근거 없이 석유제품의 품질 기준을 정해놓은 산업통상자원부의 ‘고시’를 근거로 이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가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에 ‘재생연료 혼합의무제’를 명문화한 뒤, 이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한국석유관리원이 작성한 재생연료 혼합의무제 상세운영 방안을 보면, 내년에 우선 경유부터 시행하고 휘발유는 2017년부터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두 가지 시나리오가 검토되고 있다. 바이오 디젤은 BD2.5(바이오 디젤을 2.5% 혼합한 경유)에서, 바이오 에탄올은 E3(바이오 에탄올을 3% 혼합한 휘발유)에서 시작한다는 점에서 두 시나리오의 출발은 같다. 하지만 이후 혼합 비율 확대 속도가 달라진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2020년까지 경유와 휘발유의 의무혼합 비율을 모두 5%까지 높이는 반면, 두 번째 시나리오는 같은 기간 둘 다 4%에 머물도록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국석유관리원은 첫 번째 시나리오가 적용될 경우 2020년 수송 부문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 3682만t의 10.3%인 380만3000t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낼 것으로 추정했다.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2020년 수송부문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의 8.3%인 304만2000t을 감축하는 게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두고 시민환경단체는 “바이오 연료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매우 불확실하고 특히 어떤 원료를 주로 쓰느냐에 따라 오히려 기후변화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추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는 최근 이와 관련한 성명에서 “바이오 연료의 친환경성에 회의적 시각을 제기하는 과학적 논쟁을 고려할 때 수송용 연료에 바이오 연료를 의무적으로 혼합하는 제도 도입은 현시점에서는 시기상조”라며 “바이오 연료의 지속가능성이 확실하게 보장되기 전까지 전면적 시행을 보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세계적으로 바이오 연료 생산이 늘어나면서 원료 작물 재배나, 원료 작물 재배지로 전용된 농경지를 대체하기 위한 산림 훼손이 늘어나는 것은 기후변화 대응을 논의하는 국제사회의 큰 고민거리다. 산림 지역은 지구상에서 가장 이산화탄소 흡수·저장이 왕성하게 이뤄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바이오 연료용 작물의 추가 생산에 따라 물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이 늘면서 환경 악화 우려도 높다. 게다가 곡물이 대량으로 바이오 연료로 전환되면서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식량난이 가중된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사실 바이오 연료는 연소할 때 내보내는 이산화탄소량이 바이오 연료의 원료가 자라는 동안 대기 중에서 흡수해 고정한 이산화탄소량과 같다는 점에서만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증가시키지 않는 ‘탄소중립’ 에너지이다. 실제 원료 재배에서부터 가공, 유통 과정에 직간접으로 방출하는 온실가스량을 고려하면 감축 효과는 크게 떨어진다. 이는 유럽연합이 2009년 ‘재생에너지 지침’에서 수송용 바이오 에너지로 인정하는 ‘온실가스 최소 감축기준’으로 “같은 열량의 화석 에너지에 비해 온실가스를 35% 이상 덜 방출할 것”을 규정한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 미국 등에서는 바이오 연료의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전주기 분석(LCA)을 바탕으로 온실가스 감축은 물론 식량과의 경합성까지 고려한 지속가능성 기준을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

유럽연합에서는 현재 수송용 바이오 연료의 절반만 식량이나 토지 이용에 변화를 초래하는 원료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식량 생산이나 토지 이용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원료로 만들도록 재생에너지 관련 지침을 개정하는 방안을 놓고 논쟁중이다. 시민단체들은 식량을 이용한 바이오 연료만이 아니라 토지를 기반으로 하는 모든 바이오 연료를 단계적으로 금지하자는 주장까지 내놓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최근까지도 바이오 에너지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 제기와 논쟁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온실가스 최소 감축기준조차 없는 상태에서 바이오 디젤이 만들어지고 있다. 조영 한국바이오에너지협회 사무국장은 “지난해 국내 정유사들이 경유에 혼합한 바이오 디젤 38만5000t 가운데 국내 폐식용유를 원료로 제조한 30%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해외에서 수입한 원료로 제조된 것”이라고 말했다. 폐식용유도 수입한 콩과 옥수수 등으로 만들어진 것을 고려하면 국내 바이오 디젤은 전량 수입 에너지인 셈이다. 이런 원료 조달 구조는 지속가능성 면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주홍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정책국장은 “수입 비중이 높은 바이오 연료의 혼합 의무화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를 채우는 것은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해외에 전가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강도 높은 에너지 소비 절약 정책을 시행하고, 저에너지 산업구조로 전환을 유도하는 등 친환경에너지 정책을 통해 지구 전체 온실가스 감축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노력을 우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