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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nFo/국제경제

유럽, 통화동맹 넘어 재정동맹으로.. 위기를 기회로?


유럽, 통화동맹 넘어 재정동맹으로.. 위기를 기회로? 


 
유럽이 통화동맹을 넘어 재정동맹으로 향하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8~9일 이틀간 마라톤 협상을 가진 끝에 유로존 17개국, 비유로존 유럽연합(EU) 회원국 10개국중 6개국이 '안정·성장협약'(Stability and Growth Pact)으로 명명된 재정협약에 서명했다.

1991년 12월 네덜란드 마스트리트 정상회담에서 유럽단일통화를 창안키로 합의한 후 꼭 20년만이다. 영국 등 일부국가의 반대로 조약개정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내용에선 동맹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재정이 문란한 회원국의 군기를 대놓고 잡을 수 있는 초법적인 룰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디어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위기 태풍앞에 그동안 지키지 않은 것을 제대로 지킬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위기 극복의 큰 주춧돌을 놓았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재정동맹이 잘 추진되면 급할 때 유로공동채권, 유럽중앙은행(ECB), 유럽구제기금 등 위기 구원투수들이 동원할 여지도 커진다. 정치적 이유로 그들이 손발을 묶어놨지만 가능성이 없어진 것은 아니라는 관측이다.

9일 협약이 예상된 범위에서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상승으로 답을 한 데는 이같은 추측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9일 뉴욕증시 다우지수는 186.56포인트(1.55%) 올랐다. 나스닥지수와 S&P500 지수도 각각 1.94%, 1.69% 오르며 2주연속 상승을 이었다.
 

◇유로존 과대 재정적자국 자동징계    



 
9일 7페이지, 16문항으로 발표된 EU 정상회의 성명서는 신(新)재정협약과 금융안정장치 두 부분에 대한 합의를 담고 있다.

먼저 재정협약과 관련 서명한 유럽각국은 균형재정 내지 흑자재정을 재정운영의 기본원칙으로 삼기로 했다. 경기적 요인을 제외한 구조적 재정적자 비율은 GDP 대비 0.5%를 넘지 않도록 한다는데 동의하고 이같은 정신을 헌법에 담아 실천의지를 보이기로 했다.

EU조약에 의해 GDP 대비 재정적자가 3%를 넘어 과다재정적자국으로 지정된 나라는 재정적자를 어떻게 해서 줄일 것인지를 적시한 긴축안을 EC에 제출해 승인을 받고 그 이행을 감시받도록 했다.

재정적자 의무비율이 일정수준을 넘어가면 자동으로 작동하는 시정메카니즘이 도입된다. 유럽위원회(EC)가 제안한 원칙에 따라 각국이 자율적으로 제정하되 합의된 룰이 잘 구현됐는지 유럽 법원이 가려주기로 했다.

각 회원국은 EC가 정한 스케줄에 따라 의무비율 달성을 위해 노력해야한다. 이외 유럽각국은 국채를 발행하기 전 언제 얼마를 발행할지 사전에 공고해야한다.

유로존에 포함된 나라의 과다재정적자국에는 보다 강한 벌칙이 가해지도록 했다. 유로존 회원국 다수가 반대하지 않는 한 '자동적'으로 제재를 받도록 했기 때문이다. 제재조치는 유럽위원회(EC)가 권고 내지 제안토록 했고 유로존 회원국 다수의 반대가 있지 않는 한 과다 재정적자국은 이 권고를 받아들여야 한다. 사실상 재정주권을 일부 양도한 것이다.

또한 유로존 회원국은 매년 예산초안을 EC에 제출, 검토를 받도록 했다. 해당국 예산이 재정협약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때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

◇독일, 프랑스 뜻대로

재정협약엔 독일과 프랑스가 밀어부친 내용이 그대로 담겼다. 두나라는 8~9일 회담 전 미리 만나 각자 입장을 조금씩 양보한 끝에 재정동맹안의 골격을 만들었다.

프랑스가 ECB의 국채시장 개입확대 요구를 거둬들이는 대신 독일은 EC가 각국 예산에 대해 승인권을 갖도록 하자는 당초의 입장을 포기하고 정부간 합의에 의한 자동제재라는 프랑스 입장을 받아들였다.

그 이후 양국은 기세등등하게 협약을 밀어부쳤다. 끝내 영국이 반대했지만 사실상 조약개정 수준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는 성공했다. 비유로존 회원국중 헝가리, 체코, 스웨덴은 유보적 입장을 밝혔다. 이들 국가들이 국내 논의를 거쳐 동참하면서 협약은 영국을 제외한 EU 26개국이 서명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다.

5일 독일과 프랑스 정상의 합의문에는 로빈훗세금으로 일컬어지는 금융거래세를 도입하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영국 반대로 무산됐고 9일 성명서에도 빠졌다.

◇ESM 화력 더 키우지 않아, ECB 공격개입도 배제

재정협약과 더불어 유럽구제기금 규모를 확대시키거나 ECB가 파격적으로 시장에 개입토록 할 것이란 기대는 실현되지 못했다. 당초 언급되거나 예상된 것을 확인해준 정도였다.

EU 정상들은 성명서에서 영구 구제기금, 즉 유럽재정안정메커니즘(ESM)을 당초 2013년 중반 도입키로 한 계획을 1년 앞당겨 내년 7월 시행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유럽금융안정기금(EFSF) 운영기간은 당초보다 1년 더 늘여 2013년 중반까지 존속토록 했다. 그러나 ESM과 EFSF 합쳐 기금총액이 5000억유로를 넘지 않도록 하는 바람에 구제실탄이 늘어나는 것은 없게 됐다. ESM이 기금을 채우는 만큼 EFSF는 기금을 줄여가야한다는 뜻이다.

ESM에 은행면허를 부여해 유럽중앙은행(ECB)으로부터 차입을 할 수 있도록 하는것도 용인되지 않았다. 독일이 여기에 완고하게 반대하고 있다.

다만 회원국 중앙은행들의 양자대출을 통해 국제통화기금(IMF)에 2000억유로의 자금을 쏘아주고 유럽구제를 지원토록 하는 것은 그대로 통과됐다. 당초 증액키로 한 EFSF가 목표액에 못미칠 것을 감안해 허용한 최소한도의 조치다.

ECB의 경우 마리오 드라기 총재가 8일 통화정책 회의후 기자회견을 통해 재정협약후에도 강도높은 국채시장 개입이 없을 것임을 밝혔다. 자기가 개입하기 보다 상업은행에 유동성을 더 줘서 대신 국채를 사도록 권장하는 방식을 택했다. 주간단위로 ECB 국채매입 규모가 200억유로를 크게 넘지 않을 것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시장은 위기관리자의 역할이 커지지 않은데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러나 그렇다고 가능성이 없어지진 않았다는 평가다. ECB가 됐건, ESM 규모 확대가 됐건 도덕적 해이가 창궐할 것을 우려해 처음부터 패를 보이지 않고 극도로 자제하는 연막전술을 펴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재정협약 잘될까..문제는 얼마나 잘 지키느냐

이제 첫걸음을 뗀 재정동맹은 한가지 의문점을 남겨놨다. 잘 될까라는 것이다. 약속에 불과한 만큼 누구라도 지키지 않으면 그뿐 이다. 특히 과다 재정적자국에 자동징계를 한다고 한 것이 제대로 지켜질 지 촉각이 모인다. 이 조치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가까이는 2010년 10월에 EC가 비슷한 안을 제안했다가 기각당한 바 있다.

균형재정의 기본 정신은 유로출범할때 부터 천명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GDP대비 재정적자 비율 3%기준은 지금 EU조약에도 있다. 국가부채는 GDP의 60%이하를 유지토록 돼 있다. 어기면 원래 제재도 가능했으나 독일과 프랑스가 뭉개 버린 후 아무도 지키지 않는 룰이 돼 버렸다. 2003년 독일과 프랑스는 재정적자 상한선을 동시에 어기게 되자 짜고 서로 봐주면서 재제가 가해지는 것을 막아버렸다.

각국은 이 협약을 다듬어 의회에 보내 비준절차를 밟게된다. 아일랜드 처럼 국민투표에 부쳐야하는 곳도 있다. 핀란드는 구제금융 허용이 만장일치가 아닌 다수결로 돼 있는데 떨떠름한 눈치다. 유럽정상은 내년 3월까지 관련 절차를 모두 끝낼 것을 기대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올해 GDP대비 예상 재정적자 비율이 EU 기준치 3%를 밑도는 유로존 나라는 독일, 핀란드, 에스토니아, 룩셈부르크, 몰타 5개국에 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