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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nFo/국제경제

"한국 국채 사들여라" 일본 정부가 나선 이유?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 국채 매입 방침을 공식화하면서 외환당국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아즈미 준(安住淳) 일본 재무상은 27일 일본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활용해 한국 국채를 사들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각료회의를 마치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가
한국이 발행한 원화 국채를 사들이겠다는 방침을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는 아사히 신문 보도에 대해
 “그 방안을 고려하는 것이 사실이다”고 인정했다. 

외환당국에서는 아즈미 재무상의 발언이 언론보도 내용을 확인하는 형식이었지만 일본 정부의
국채매입 의사를 공식적으로 외부에 알렸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일본이 한국 국채
매입 의사를 전달한 이후 한일 외환당국의 거의 1년 가까이 물밑에서 논의됐던 관련 논의가 수면 위에
떠오르는 게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달러 비중을 줄여 엔화 강세를 막기 위해 원화 자산 투자를 늘리려는 일본의 입장과 외국인의 국채 투자
비중이 과도하게 커지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한국의 입장이 맞부딪히게 됐다. 

이와 관련, 우리나라 외환당국인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질서 있는’ 한·중·일 국채투자 프레임워크를
만든다는 방침이다. 다음달 2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는 ADB(아시아개발은행) 총회에서 한중일
재무장관이 합의점을 도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 정부, 국채 투자 목적·규모·이탈시기 등 투자 정보 공유 추진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일본·중국과)서로 질서 있게 투자하기 위해 협의를 하고 정보공유를 하는 프레임워크(Framework)를 갖추기로 했다”며 “다음 주 마닐라에서 열리는 ASEAN+3(한·중·일) 회의를 통해 결론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는 논의 프레임의 형태와 수위 등을 놓고 일본 중국과 막판 의견 조율을 하고 있는 단계다. 정부는 이번 ADB 총회에서 매듭짓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다른 나라 중앙은행의 국채 투자 자체를 막지는 않겠지만 투자가 무질서하게(disorderly)하게 이뤄지면 안된다는 입장이다. 특정 국가가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취한 조치가 다른 나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스필 오버(spill-over)’ 현상을 최대한 방지해야 한다는 논리다.

외환당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외국인의 채권투자 자금에 대해서 비슷한 관점을 취하고 있다. 단시일내에 과도하게 늘어난 외국인의 국채 투자자금으로 중앙은행이 금리인상을 하더라도 시중금리가 상승하지 않아 통화정책 효과가 떨어질 수 있고, 외국인의 채권 투자자금이 한꺼번에 이탈할 경우 환율과 금리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외국인의 국채 투자 보유액은 글로벌 위기 이전인 2006년 4조원 수준에 불과했으나 지난달말 62조원 수준까지 급증했다. 전체 국채 발행잔액 중 외국인 투자 보유액이 차지하는 비율운 17%에 이른다.

이같은 현상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경기부진과 재정위기를 겪는 국가 통화인 달러화와 유로화 자산에 대한 대체 투자처로 원화가 부각된 데 따른 것이다. 최근들어서는 중국, 태국 등 아시아 신흥국 중앙은행들에 이어 스위스 등 선진국 중앙은행들도 한국 국채 투자 의사를 타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중앙은행 내지 정부 기관들이 다른 나라 국채를 투자할 때 상호간 투자 규모 및 목적을 공유하는 논의의 틀을 만들자는 입장이다. 또 자금을 회수할 때도 관련 정보를 공유해 시장의 혼란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대비를 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부 외환 당국자들은 이미 지난 3월 중순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이사 등의 중앙은행을 방문해 이같은 제안을 했었다. 한·중·일 사이의 국채 투자 정보공유 프레임이 형성되면 동남아 국가들과 다른 선진국에서 같은 수준의 논의 틀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게 우리 정부의 기대다. 

일본이 한국 국채 투자 의사를 공식화한 것과 같이 우리나라도 한국은행이 지난 24일부터 200위안(약 32억달러) 한도에서 중국 국채 투자를 개시한 상황이라 논의가 예상보다 수월하게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일본은 중국 국채를 100억달러 한도 내에서 매입하고 있다.
중국은 일본 국채를 1조엔 이상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 국채도 10조원 이상 보유 중이다. 

◆ “원론적 합의 이상은 힘들 수도” 

그러나 이런 논의 프레임이 우리 정부가 희망하는 정보 공유 수준까지 이를 지 여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관련 당국자들도 최대한 말을 아끼고 있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각국 마다 외환보유액 투자 목적과 운용 기조에 차이가 있어서 구체적인 합의를 이끌어낸다고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원론적인 합의 이상은 어려운 환경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논의 프레임이 ‘ASEAN+3(한·중·일)’가 지향하는 아시아 채권시장의 발전을 위한 협조를 강화하자는 선언적 내용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아직 관련 국가들 사이에 논의 의제와 수위 등을 놓고 협의를 하고 있는 중이라 결과를 예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