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inFo/IT/과학

동남아 전철 밟나 [8·12 약가인하,건강주권 흔든다]

동남아 전철 밟나

[8·12 약가인하,건강주권 흔든다]




#. 1994년 세계 제약시장의 20%를 차지하던 일본 제약산업의 점유율은 2009년 10% 이하로 반토막 났다. 같은 기간 세계 의약품 시장 규모가 세 배나 성장했지만 일본 제약산업은 15년간 정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약가 인하 때문이었다.

#. 대만,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들은 토종제약의 뿌리를 잃어버린 '제약 식민지'로 꼽힌다. 다국적기업에 자국 의약품 시장을 대부분 잠식당해 값비싼 수입 의약품에 자국민의 건강을 맡기고 있어서다.

정부의 강력한 약제비 절감정책이 국내 제약산업의 식민지화를 재촉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최근 국내 시장을 잠식해 오는 다국적제약사들의 기세와 정부의 정책 기조가 토종 제약산업의 심각한 침체를 경험한 이웃나라의 전철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제약 식민지 남의 일 아니다

2일 한국제약협회와 IMS헬스데이터에 따르면 1994년 세계 제약시장의 21.6%를 차지하던 일본 제약산업의 점유율은 1999년 16%, 2005년 11.3%로 하락세를 걸었다. 2009년에는 시장점유율이 10% 미만까지 내려앉았다. 이 기간 중 유럽의 의약품 시장이 28.5%로 급성장하고 신흥시장의 세계 시장 공략이 강화된 것과 대조적인 흐름이다.

일본은 약가인하에 초점을 둔 강력한 정책으로 약제비 지출을 줄이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지만 신흥시장의 상당부분을 미국, 유럽, 중국 등 경쟁국에 넘겨주는 수모를 겪었다.

무리한 약가인하 정책으로 자국 제약회사의 경쟁력을 상실한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국내 제약산업에 시사점을 주고 있다.

제약협회에 따르면 베트남은 85%, 태국은 75%, 말레이시아는 89%, 싱가포르는 97%에 달하는 국내 제약시장을 다국적기업에 내주고 있다. 다빈도 보험청구 의약품(보험청구 100대 의약품)의 50%를 다국적제약사들이 점유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다국적기업들의 시장 장악력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국내 제약사 관계자는 "뒤늦게 심각성을 깨달은 일본 정부는 범부처 민·관 협의회를 꾸려 신약 신속심사, 약가가산제 등을 골자로 한 새로운 약가제도로 방향을 선회했다"며 "아시아의 독보적인 제약강국으로 글로벌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일본 제약시장도 15년간 저성장을 면치 못했는데 신약 기반이 취약한 국내 제약산업의 미래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비상경영에도 위축 불가피

국내 제약사들은 일제히 비상경영을 선포했지만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한나라당 원희목 의원이 제약협회를 통해 8·12 약가인하 방안에 따른 제약산업 여파를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31개 제약사 중 30개사가 보험의약품 687품목의 생산중단을 고려하고 있다. 이들 의약품 중에는 진료현장에 꼭 필요해 원가 등의 문제로 생산을 중단하지 못하도록 한 퇴장방지의약품 112개도 포함돼 있다.

약가 일괄인하 등으로 인한 2조5000억원대 손실을 메우기 위해서는 제품 구조조정(25.5%), 저가원료나 위탁생산(OEM) 전환을 통한 생산원가 절감(22.3%), 판매관리비 축소(10.6%), 연구개발 투자 축소(12.8%)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10개 제약사는 총 직원 7283명 중 1251명(17.2%)의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다. 4개 제약사는 연구개발 투자를 위해 진행하던 시설투자를 포기하거나 수정했다. 11개 제약사는 공장증축 규모를 축소하거나 제품 구조조정을 고려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공략을 목표로 야심차게 추진하던 신약개발도 중단 위기에 처했다. 토종 제약사들의 자립기반이 약화될 경우 필수·희귀의약품 등의 공급망이 불안해지는 것도 문제다.

국내 제약사 관계자는 "약가 일괄인하로 수익성이 급감하면 필수의약품을 생산할 여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며 "대규모 약가인하가 가시화되면 다국적 제약사들이 시장을 장악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출처: 파이낸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