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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nFo/정치

공멸할 것인가, 해체할 것인가… 유로존의 선택 폭 넓지 않다

모든 회원국 만족시킬 최선의 해법은 없어
위기에 휩싸인 국가들 최대한 무질서를 피해 동맹서 탈퇴시켜야

 누리엘 루비니ㆍ뉴욕대 교수



유로존 재정위기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고 있다. 그리스는 디폴트(default) 선언뿐 아니라 통화동맹에서 불명예스럽게 퇴출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탈리아도 국채금리가 위험 수준인 7%를 넘어서면서 세계 경제에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포르투갈(P)·아일랜드(I)·이탈리아(I)·그리스(G)·스페인(S) 등 이른바 'PIIGS'로 불리는 나라들은 '소비국가'로 살아왔다. 소득보다 소비가 많았다. 사상 최대의 경상수지 적자를 낳았다. 반면 독일·네덜란드·오스트리아·프랑스 등 유로존 핵심 국가들은 '생산국가'로 지내왔다. 소득보다 소비가 적었다. 사상 최대의 경상수지 흑자를 누렸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소비국가와 생산국가의 임금과 생산성을 살펴보자. 독일의 경우 노동 생산성이 임금 증가율을 앞질러 왔다. 독일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돈을 적게 번 셈이다. 그만큼 수입상품을 사서 쓸 여유가 없었고 이는 경상수지 흑자로 이어졌다. PIIGS 국가에선 180도 다른 상황이 있었다. 임금 증가율이 노동 생산성을 앞질렀다. 이곳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수입이 늘어난 셈이다. 수입상품 소비가 늘면서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됐다. 아일랜드나 스페인에서는 저축률이 급감하고 집값 거품 현상이 과도한 소비를 부추겼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지난 17일 정부의 긴축 정책과 교육예산 삭감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소비국가'들의 민간·공공 부문 부채는 집값 거품이 터지고 경상수지 적자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관리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경제적 불황과 경쟁력 상실마저 맞물린 상황이다.

주변부 국가들의 성장과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지는 긴축 조치와 구조 개혁에 착수하면서 동시에 대칭적인 통화 재팽창(reflation) 정책을 펴는 것이다. '대칭적'이라는 것은 중심부와 주변부 국가가 함께 부담을 떠안는다는 의미다. 구체적으로는 ▲유럽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상당 부분 완화하고 ▲잠재적으로 지불능력을 지닌 국가에 대해 무제한적으로 지원하며 ▲주변부 국가들에 긴축조치가 강제될 경우 중심부 국가들이 경기 활성화 조치에 나서는 것 등이 이런 방안에 포함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유로존 핵심인 독일과 유럽중앙은행은 이런 방안을 반대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이다.

두 번째 선택지는 심각한 불경기를 초래할 수 있는 통화 수축(deflation) 정책이다. 이 방안은 주변부 국가들의 재정적 긴축 조치, 생산성을 높이고 단위 노동비용을 줄이기 위한 구조 개혁, 실질 통화가치의 하락 등을 포함한다. 그러나 부작용이 너무 많다. 긴축 조치는 필수적이지만 단기적으로는 심각한 불황을 초래한다. 구조 개혁은 정리해고와 부실기업 퇴출을 낳고 점진적으로 노동과 자본을 신(新)산업 육성을 위해 재배치해야 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성장이 저해될 것이다. 주변부 국가들이 시중의 통화를 흡수하면 불경기가 다시 발생하고 채무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

세 번째 선택지는 주변부 국가들의 디폴트 선언과 유로존 탈퇴이다. 새로운 자국 통화의 가치 하락을 통해 경제성장과 경쟁력을 회복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물론 유로존이 무질서하게 해체되기 시작한다면 2008년 리먼 브러더스의 붕괴만큼 심각한 충격이 올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유로존의 중심국들은 주변부 국가들이 경쟁력 없는 저성장의 상태라도 계속 연명하게 하는 마지막 선택지를 고려할 것이다. 이는 (중심부 국가가) 주변국들의 소득을 늘리기 위해 필요한 엄청난 규모의 이전지출(실업수당 등 생산활동과 무관한 사람들에게 반대급부 없이 지급하는 지출)을 단행해야 가능하다. 이탈리아에선 지난 10여년 동안 부유한 북부 지역이 가난한 메조지오르노(Mezzogiorno) 지역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식으로 이와 비슷한 일을 해왔다. 하지만 유로존 차원에서는 이러한 재정 이전은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약 중심국들이 통화 수축을 통해 주변국에만 고통을 떠안기는 방식을 고집한다면 주변부 국가의 디폴트 선언으로 인해 유로존이 공멸할 수 있다. 세계 8대 경제 대국인 이탈리아는 너무 거대해서 포기할 수도 구제해 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우선 부채에 대한 강압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한 뒤 순차적으로 통화 동맹에서 탈퇴하는 길을 택해야 한다. 이것이 무질서하지 않으면서 효과적으로 유로존을 해체하는 길이다.

프로젝트 신디케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