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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nFo/정치

"日 싸구려 버전으로 여겨지던 한국, 지금은…"

'BRICs' 용어 탄생 10주년··· 창시자 짐 오닐 골드만삭스자산운용 회장 국내언론 첫 단독 인터뷰

다음 투자처? 역시 브릭스
중산층 인구만 8억명, 2020년엔 16억명 넘어
세계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도 49%까지 오를 것
"중국이란 기회를 잘 포착한 한국, 향후 5~10년 사이에 선진시장 진입할 것"

▲ 블룸버그
"투자의 세계에서 어떤 사람들은 브릭스(BRICs)를 낡고 지겨운 이야기로 치부한다. 유행이 끝난 것 아니냐고 한다. '다음은 어디냐?'며 투자할 곳을 찾는다. 그러나 나는 '다음도 브릭스'라고 답하겠다. 브릭스의 성공 스토리는 끝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에 가깝다."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등 신흥 경제 4개국을 일컫는 용어인 '브릭스'를 창시한 골드만삭스자산운용의 짐 오닐(Jim O'Neill·54) 회장. 브릭스의 미래에 대한 그의 전망은 확고했다. 지난 10년간 풍부한 자원과 인구,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세계 경제성장을 견인한 것처럼, 새로운 투자와 성장의 기회를 지닌 브릭스의 매력은 여전하리라는 것이다. 그는 두터워지고 있는 브릭스 국가의 중산층을 근거로 들었다.

"골드만삭스가 중산층의 기준으로 보는 월소득 6000~3만달러인 브릭스 내 인구는 현재 8억명으로 추산된다. G7 인구(7억명)보다 많다. 2020년쯤엔 16억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중국과 인도가 이런 추세의 선두에 설 것이다. 향후 10년 안에 중국 중산층 인구는 정점을 찍고, 인도의 중산층 증가에도 가속이 붙을 것이다."

짐 오닐 회장은 지난 2001년 11월 30일 '더 나은 글로벌 경제 브릭스의 구축(Building Better Global Economic BRICs)'이라는 보고서에서 '브릭스'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2년 후 '브릭스'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하자 40대 중반의 이코노미스트는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2005년 비즈니스위크는 "통화시장에서 하루에 1조달러를 주무르는 골드만삭스에서도 그는 '록 스타(rock star)'로 꼽힌다"고 했다. 탁월한 분석력과 시장 전망 때문이다. 안개에 휩싸인 글로벌 경제에서 그는 투자자와 언론이 가장 신뢰하는 투자 구루(guru)로 꼽힌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브릭스는 세계 경제성장률의 36.3%를 기여했다. 2020년엔 이 기여도가 49%까지 상승할 전망이다. 짐 오닐 회장은 이런 브릭스가 세계 경제, 특히 재정위기라는 수렁에 빠진 유로존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유로존 중심국인 독일을 보자. 독일의 대(對)브릭스 수출 비중은 11%로 다른 유럽 국가보다 높은 편이다. 런던의 대표적인 쇼핑거리인 본드 스트리트(Bond Street)에 가봐라. 럭셔리 상품을 사려고 브릭스에서 온 쇼핑객들로 넘쳐난다. 앞으로도 브릭스는 거대한 수출시장이자 소비국가 역할을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짐 오닐 회장은 한국이 걸어온 길에 주목했다. 그는 "한국은 옆집에 있는 큰 기회(중국)를 잘 포착하고, 수출시장으로서 중국을 집중 공략해 성공을 거뒀다"며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난 한국을 롤 모델(role model)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21세기 초 가장 유명한 신조어가 된 '브릭스'의 10주년을 맞아, 지난달 28일 Weekly BIZ가 영국 런던에 있는 골드만삭스자산운용 사무소에서 짐 오닐 회장을 만났다. 그가 한국 언론과 단독으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짐 오닐 회장은 자신을 "외환(外換) 가이(guy)였다"고 소개했다. 그는 외환시장 분석가로 경력을 쌓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곧바로 컴퓨터를 켜고 유로-달러 환율을 확인한다. 환율 상황을 보고 나서야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 세상 분위기가 어떤지 살피는 것이다. 평생 환율에 민감하게 살아왔다. 일종의 습관이다." 그는 대부분의 질문에 "Yes!", "No!", "Definitely!(물론!)"로 시작하는 명쾌한 답변을 내놨다. 별도의 자료 없이 척척 대답했다.

하지만 엄밀히 얘기하면, 브릭스에 대한 짐 오닐 회장의 전망은 빗나갔다. 브릭스는 그의 예상을 한참 웃도는 규모로 커가고 있다. 그의 보고서가 발표된 2001년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브릭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8.3%. 지난해 그 비중은 17.4%로 2배 이상 증가했다.

"2001년 예상한 10년 후 브릭스의 비중은 14% 수준이었다. 하지만 현재 20%를 향해 가고 있다. 특히 중국의 성장이 놀랍다. 중국의 경제규모가 브릭스의 다른 세 국가를 합친 것만큼 커졌다. 독일만큼 커진다고 봤는데, 이탈리아·독일·일본을 모두 제쳤다. 돌발적인 경제 재앙이 있지 않는 한 (세계 경제에서) 브릭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질 것이다."

'브릭스'란 용어는 이 4개국을 움직였다. 짐 오닐 회장은 "브릭스 국가들이 실제로 정치적 클럽을 형성해 정기적인 회담을 열게 된 것도 예상치 못한 일"이라고 했다. 2009년 러시아에서 첫 4개국 정상회담을 가진 브릭스는 올해까지 총 세 차례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 짐 오닐 회장은“때로는 부담이 된다”면서도“회장이라는 자리에서 이 세상의 거대한 변화를 관찰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 이석호 기자
"브릭스 과열? No!"

―브릭스 미래에 대해 너무 낙관적인 것 같다. 과열 우려는 없을까?

"없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브릭스의 성공 스토리가 끝났다는 예견이 나왔다. 나 역시 우려한 게 사실이다. 특히 중국 경제의 과열(過熱)에 대해 걱정했다. 하지만 중국은 금융위기를 잘 견뎌냈고, 소수의 정책결정자들이 의도한 대로 경제를 잘 조절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억제에서 잘 나타난다. 금리를 낮추고 지급준비율을 올리는 등의 조치가 연속해서 나왔지만, 올해 3분기 9.1%나 성장했다. 중국의 목표는 아직 성장 촉진(stimulus)이다. 다만 그 속도와 보폭을 줄이고 있다. 중국의 경제 리더십이 잘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

―중국 경제의 경착륙 위험은 없다는 건가?

"그렇다. 결과적으로 2008년은 중국에 좋은 기회가 됐다. 세계 경제의 기초가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중국은 버텨냈다. 어쩌면 더 튼튼한 경제가 됐다. 내년에 중국 인플레이션율은 4%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본다. 내 예측이 틀려서 인플레이션 억제에 실패한다면 경착륙 가능성이 되살아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작다. 중국 주식시장은 저점을 찍었다고 본다. 다른 나라의 불경기에 영향을 받겠지만 내수로 극복할 것이다."

―부동산 버블에 대한 우려도 많다.

"역시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부동산 버블은 정부 의지에 달린 문제다. 고의적으로 (버블을) 터뜨리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혹여 문제가 되더라도 관리 가능한(manageable) 문제라고 본다."

짐 오닐 회장은 브릭스 4개국 가운데 인도의 행보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인도 정부는 최근 소매(小賣) 유통업체에 대한 외국 기업 지분율을 51% 이상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제 완화 방안을 발표했다. 그는 "인도 인구가 12억명이다. 소매 유통시장 개방안이 현실화되면 인도 농업의 생산과 유통 부문에 엄청난 규모의 시장이 생기게 된다. 비슷한 조치가 이어질 경우 2020년쯤부터 인도는 중국이 누린 두 자릿수 경제성장을 경험하며 단일 경제권으로는 세계 GDP 성장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對브릭스 공략 성공적"

짐 오닐 회장은 지난해 말 '믹트(MIKT)'라는 새로운 용어를 제시했다. 올해 세계 경제를 이끌 핵심국가로 멕시코(M)·인도네시아(I)·한국(K)·터키(T)를 지목한 것이다. 그는 브릭스에 믹트를 더한 8개국을 '성장시장(Growth Market)'이라는 틀로 묶었다. '성장시장'은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 이상인 선진국 이외의 경제국. 바람직한 인구분포, 성장 여건, 금융시장의 발전 정도, 투자자의 접근 가능성 등을 고려한 새로운 범주다.

―한국은 '성장시장'에 포함됐다. 그 이유는?

"작년 11월 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7년 만에 한국에 갔었다. 이틀간의 짧은 방문이었지만 한국이 세계 경제 변화의 흐름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의 엄청난 수출량을 봐라. 1998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한국인이 가진 모든 것을 일본인이 가진 것의 싸구려 버전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 삼성이나 현대자동차 같은 기업들이 만들어내는 제품을 봐라. 한국은 중국이란 기회를 잘 포착했다. 향후 5~10년 사이에 선진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두 가지 이유에서 성장시장으로 분류됐다. 우선 1인당 GDP가 2만달러 수준으로 G7 국가들에 못 미친다. 둘째로 G7과 비교해 아직 시장에 규제가 많다. 하지만 선진시장이 될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미국과의 FTA는 (정치적·경제적으로) 상징적이고 긍정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그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무역에서 가장 큰 부분은 브릭스와 넥스트 일레븐(N-11·골드만삭스가 언급한 11개의 신흥 경제국. 한국·멕시코·이란·이집트·터키·베트남·인도네시아·필리핀·파키스탄·방글라데시·나이지리아) 사이에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무역의 동력은 다른 나라의 국내 수요 성장률이다. 한국은 중국 등 성장세가 강한 국가와 인접해 있다. 이들과의 관계가 한국의 무역에 더 중요하다. 한·미 FTA는 좋은 것(good thing)이긴 하지만 엄청난 것(huge thing)은 아니라고 본다."

한국의 총 교역에서 브릭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15%에서 지난해 31.2%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중국도 2배(12.1%→25.1%) 늘었고, 인도 및 러시아와는 각각 0.9%와 0.6%에서 2.5%와 1.7%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브라질도 소폭(1.1%→1.7%)이지만 증가 추세다.

"그리스·이탈리아 통화동맹 탈퇴는 공멸"

'이대로 정말 끝인가?(Is this really the end?)'

짐 오닐 회장과 만나기 이틀 전 발행된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의 표지 제목은 유럽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유로존의 해체는 2008~2009년과 같은 글로벌 차원의 불황을 야기할 것"이라며 "유럽연합(EU) 자체의 생존마저 의심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짐 오닐 회장은 유럽통화동맹이 설계 단계에서부터 결함을 지니고 있었다고 진단했다.

―이번 위기의 원인을 통화동맹의 구조와 리더십의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무슨 의미인가?

"시작부터 너무 많은 국가를 참여시켰다. 유럽연합의 기원부터 따져보자. 세계 2차대전을 겪은 유럽은 하나의 공동체를 구축해 미래의 충돌을 예방하고자 했다. 경제적 유사성을 지닌 독일과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등을 중심으로 통화 연합을 만들려는 것도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지중해 연안 국가들, 핀란드, 아일랜드 등 경제 여건이 다른 주변부 국가들까지 포함하는 것은 단일 통화정책을 위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3% 룰'(통화동맹 가입국의 재정 적자 상한선을 국내총생산 대비 3%로 제한)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정확히 알지도 못한 채 강제력이 없는 규정으로 놔둔 것도 문제였다. 통합 프로젝트는 디자인부터 결함을 지니고 있던 것이다. 리더십은 제도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탈(脫)국가적 사고를 할 능력이 없다. 프랑스는 프랑스, 독일은 독일만 생각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통합된 미국(United States)을 위해 고민하지, 자기가 상원의원이던 일리노이주(州·state)만 놓고 사고(思考)하는 건 아니지 않나. 최상의 해결책은 진정성을 갖고 범유럽주의적(Pan-European) 사고로 전환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는 건 어떨까?

"안 된다. 가능성이 적을 뿐 아니라 연쇄적인 유로존 탈퇴에 대한 시중의 우려를 키우기 때문에 위험하다. 포르투갈은 언제쯤? 스페인은 언제? 이런 식의 우려만 커질 것이다. 디폴트(default) 가능성은 크다. 주식시장도 디폴트 가능성을 90% 이상으로 보고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마저 디폴트 되는 건 막아야 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탈리아 부채 문제에 노출돼 있다. 독일의 보수적인 정책결정자들도 이제는 유럽중앙은행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단계까지 왔다. 유럽중앙은행이 이름 그대로 중앙은행처럼 채권 매입 등 위기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누리엘 루비니 교수(뉴욕대) 같은 일부 전문가들은 그리스는 물론 이탈리아도 유로존에서 질서 있게(orderly) 탈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동의하지 않는다. 이탈리아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북부와 가난한 남부로 나뉘어 있고, 북부는 독일과 프랑스 수준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탈리아 없이 유럽통화동맹은 탄생할 수도 없었고, 앞으로도 유지될 수 없다."

―유로 본드(Eurobond·유럽 공동채권) 발행이 추진되고 있지만 유로존 핵심국 인 독일이 반대하고 있다.

"독일의 '전략'이라고 본다. 독일은 유럽재정부 같은 기구를 만들어 유럽 공동의 재정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믿고 있는데, 다른 가입국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공동 재정정책이 받아들여지면 독일이 유로 본드 발행을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 오는 9일 열릴 EU 정상회담 결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 그래픽=정인성 기자 1008is@chosun.com
"집단적 사고를 경계하라"

"향후 10년의 투자 키워드를 제시해 달라"고 부탁하자,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한 단어로 생각을 정리했다. "Open-minded!"

"우리는 현재 21세기판 골드러시(gold rush) 시대에 살고 있다. 19세기 중반 금을 캐러 미국 캘리포니아로 몰려가던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달려들었다. 겁이 났지만 미지의 땅으로 들어갔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불확실성 속에서 기회를 잡으려 한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피난처는 없고 불가능한 것도 없다는 것이다. 마음을 열고 기회를 향해 뛰어들어야 한다. 지금 캘리포니아가 어떻게 됐는지 생각해 봐라."

―미국의 불경기, 유럽 재정위기…. 투자자들은 불안하고 조심스럽다. 주식이냐 채권이냐를 고민하고 있다.

"너무 조심하는 것도 좋지 않다. 투자자들은 가축의 무리(herd)처럼 몰려다니는 경향이 있다. 이해할 수 없다. 훌륭한 투자자는 무리지어 다니지 않는다. 명확한 포커스를 갖고 대담하게 행동해야 한다. 지난주 10년 만기 국채를 발행하려던 독일이 목표물량의 65%밖에 못 팔자 시장은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독일이 국채 경매에 사실상 실패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통화동맹의 종말이 다가온 것처럼 호 들갑을 떨 일은 아닌 것이다. 가치(value)에 대한 관심을 잃지 말고, 집단적 사고에 사로잡히지 마라."

―가장 호감을 갖고 있는 주식시장은 어디인가?

"한두 군데가 아닌데…. 중국, 미국 다 좋아한다. 심지어 이탈리아도 괜찮다. 현재 이탈리아 주식시장은 매우 저렴하다. 이탈리아는 통화동맹에서 이탈하지 않을 것이다. 이탈리아 주식을 사는 것은 아마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투자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