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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택지 애물단지 전락…미분양 아파트 쌓이는데 공급 늘어


 
택지 애물단지 전락…미분양 아파트 쌓이는데 공급 늘어
 


  우리나라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총 6만9807가구(지난해 12월 기준). 금액으로 따지면 가구당 3억원씩만 잡아도 무려 20조원을 넘는다. 

어쩌다 이렇게 많은 미분양이 발생했을까. 부동산 경기 침체로 아파트 투자 수요가 줄어든 것도 문제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 정책에 있다는 감사 결과가 나왔다. 국토해양부가 공공택지를 초과 공급해 대규모 미분양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감사원이 2월 초 공개한 택지개발사업추진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국토해양부는 2003년부터 10년간 공공택지 429㎢를 조성해 주택 250만가구 공급 계획을 마련했다. 하지만 2007년 이후 주택 미분양이 늘자 2009년부터 주택 공급량을 연평균 10만가구씩 줄였다. 

주택 공급이 줄어들면 택지 공급도 줄어드는 것이 당연한 논리다. 그런데 국토부는 황당하게도 공급량을 더 늘렸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국토부 지시에 따라 2009년부터 2년간 41.1㎢를 초과 공급했고 이 중 29㎢가 미분양됐다. LH가 초과 공급한 41.1㎢의 택지는 여의도 면적의 5배에 달한다. 극심한 적자에 허덕이던 LH는 부랴부랴 23곳의 택지지구 조성을 취소하고 46곳의 사업기간을 연기하기도 했다. 

국토부가 이렇게 토지를 초과 공급한 이유는 뭘까. 인구 수 등 수요 예측 기초자료가 되는 데이터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탓이다. 국토부는 전국 128개 지방자치단체 중 127개가 자기 지역에 사업을 많이 유치하기 위해 목표 유입 인구를 부풀려 신고했는데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도시계획을 세웠다. 각 지자체들이 제출한 목표 인구 수를 합하면 2010년 기준 실제 인구 수보다 840만명이나 많은데도 별다른 검토 없이 승인했다는 얘기다. 

한 예로 LH는 경기 양주시 3개 지구 택지개발사업 수요를 평가하면서 인구가 250% 늘어난다는 도시기본계획상 목표 인구(2001년 13만8748명, 2011년 35만4000명)를 근거로 지난해 12만9105호의 주택 수요가 있다고 평가하고 택지를 공급했다. 하지만 수요가 부족해 1곳은 대규모 미분양이 발생했고 나머지 2곳은 사업 착수조차 못 했다. 감사원은 이 지역에서만 1조3000억원의 손실이 예상된다고 추산했다. 

이는 일부 사례일 뿐이다. LH가 추진 중인 전국 98개 지구 중 68곳에서 과다 추산된 인구 수를 바탕으로 택지개발을 했고 전체 미분양의 78%가 이들 지역에서 발생했다. 이를 바탕으로 계산하면 전국적으로 LH가 최소 수조원의 손실을 입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감사원 측은 “국토부 장관에게 도시기본계획을 승인할 때 목표 인구 수를 합리적으로 추정하고 택지개발지구 지정 시 이를 감안한 수요 평가가 이뤄지도록 통보했다”고 말했다. 
 


 여의도 5배 면적 택지 초과 공급 

사정이 이 지경까지 온 건 택지개발에 앞서 기본적인 수요 조사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명확한 기준 없이 무분별한 택지개발을 진행해온 탓이다. 택지수급 기초가 되는 주택종합계획을 고려하지 않고 과잉공급으로 미분양 택지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지 못했다. 한 예로 경기도의 6개 지역에서는 2009~2015년까지 보금자리 택지개발사업으로 유입 인구가 총 18만명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정작 보금자리사업을 하지 않는 지자체 인구 유출을 고려하지 않았다. 이로써 ‘도시기본계획 목표 인구만 18만명이 단순 증가한다’는 무책임한 결과를 내놓았다. 

양재모 한양사이버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사업 타당성을 파악하기 위해 수요 조사를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사업 타당성 보장, 즉 사업수익을 내기 위해 수요 조사를 끼워 맞추는 형식으로 진행돼왔다”고 지적했다. 한태욱 대신증권 부동산전문위원은 “시장 수급 변수를 살피지 않고 지자체별 선심성 정책 때문에 택지개발이 남발돼 왔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장 수급을 고려한 택지 지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앞으로는 지역별 인구 변화, 주택 수요공급 등을 예측해 이를 택지개발 정책에 반영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아직까지 부동산 통계 시스템이 미흡한 만큼 타당성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 역할이 중요하다. 
 

기존 아파트 부지 인근에 개발 예정인 광명시흥보금자리주택지구 전경.

 수요 예측 잘못해 LH 수조원 손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사장은 “국토부가 자체적으로 주택 수요를 예측했다기보다는 산하기관이나 관련 업체에 용역을 줬을 가능성이 높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민간업체를 포함한 3개 이상의 복수기관에 용역을 맡겨 객관적인 검증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태욱 위원은 “타당성 조사와 실제 사업성과를 비교해 20% 이상 차이가 나면 수요 조사에 참여한 기업, 전문가들 참여를 향후 몇 년 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어떤 택지개발 정책이 필요할까. 과거와 같은 공급주의, 팽창주의식 택지개발을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2008년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토지, 주택 개발 수요의 거품이 빠지고 있다”며 “보금자리주택 등 각종 택지개발사업을 처음부터 실사해 타당성이 없는 ‘과잉 개발사업’은 과감히 축소, 폐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일정 규모 이상의 택지개발은 LH 대신 해당 지자체가 주도하고 환수된 개발이익은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주택 건설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이와 함께 택지개발사업은 신도시 개념이 아닌 기존 토지를 재활용하는 도심재생방식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비슷한 맥락에서 정부가 아닌 민간 주도의 택지개발사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민간사업자가 택지개발을 통한 도시개발사업을 진행하기에 어려운 점이 많았다”며 “정부는 서민층, 민간업체는 중상위층을 위한 주택 공급으로 역할을 분담하려면 민간업체에도 공공 수준의 택지개발 기회를 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신도시 지정 포기하기로 

다행히 정부도 감사원 지적 이후 택지 수요공급 대책을 마련하고 나섰다. 개선책에 따르면 국토부는 택지 수요 예측 시 주택종합계획과 각 시도 인구, 가구 수 증가율 등을 종합 검토, 분석하기로 했다. 민간택지 정보를 포괄하는 택지정보시스템도 운영한다. 

지역별 수요공급 계획도 좀 더 정교하게 만들기로 했다. 신도시를 건설하기 전 택지 수급 예측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방안, 도시기본계획 승인 시 유입·유출 인구 수를 정확히 반영해 목표 인구를 합리적으로 추정하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국토부는 보금자리주택 정책효과에 대한 연구용역부터 발주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보금자리주택 입주자를 분양, 임대주택별로 조사해 분양·임대 비율이나 공급시기를 조절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당분간 신도시 지정도 하지 않기로 했다.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은 “수도권의 택지 수급을 분석한 결과 수요 대비 공급에 여유가 있어 단기간 내 택지 공급 부족 문제는 없을 것이다. 당분간 신도시를 새로 지정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정부가 신도시 추가 지정을 중단하기로 한 것은 대규모 주택 공급의 핵심 수단이던 신도시 효용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2015년까지 택지 수요 면적은 104.8㎢지만 개발이 진행 중인 신도시 등으로 공급 가능한 택지 면적은 2015년까지 125.2㎢에 이른다. 향후 인구 감소가 진행되면 대규모 신도시를 지을 만큼의 주택 수요가 생기기 어려워 사실상 ‘신도시 포기 선언’이란 분석이 많다.